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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분류 : 미술 / 미술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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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저 자 이태호
ㆍ역 자
ㆍ구 분 국내서
ㆍ발행일 2016년 02월 19일
ㆍ정 가 23,000원
ㆍ페이지 424 페이지
ㆍISBN 978-89-6053-370-7
ㆍ판형 148×210
ㆍ출판사 마로니에북스

조선시대의 예술, 초상화

역사가 기록한 시대의 얼굴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가 30년 동안 접한 1,000여 점의 우리 얼굴,

그 중 엄선된 80점의 초상화를 만나다!



조선 문화부흥의 정점, 진경 정신이 탄생시킨 또 하나의 리얼리티의 기록!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는 엄선된 80점의 초상화를 통해, 카메라 옵스쿠라의 유입이 조선 후기 초상화에 미친 영향과 조선의 진경 정신을 바탕으로 제작된 초상화의 사실성 및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초판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 조선 후기 초상화와 카메라 옵스쿠라』의 오류를 수정하고, 상태가 좋지 않았던 도판들을 전면 교체하였다. 또한 윤두서 자화상에서 나타난 배면선묘 기법에 대한 추정과 이태호 교수가 유럽에서 만난 ‘숨겨졌던 우리 얼굴들’에 대한 내용 등을 첨가하여 알찬 내용으로 재편집하였다.

책은 1장에서 정약용의 「다산학보」를 통해 조선 후기에 카메라 옵스쿠라를 이용하여 초상화를 그렸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2장에서 카메라 옵스쿠라가 조선 후기 초상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3장은 사대부 초상화의 유형과 형식변화를 다채로운 도판을 통해 시각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4장에서는 강세황의 셋째 아들 강관이 쓴 「계추기사」를 통해 초상화의 제작공정과 비용, 족자 표장법 등을 알아본다. 마지막 5장에서는 "신익성 초상", "윤두서 자화상", 구택규 초상화 2점과 조선 여인의 초상화 등 새로 발견되었거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초상화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 후기 초상화의 사실성과 아름다움

“흔히 문중의 초상화를 조사하다 보면 “초상화의 주인공과 그 후손들이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0여 년 전 구례 매천사의 〈황현 초상〉을 열람할 때, 초상화 속의 황현 선생과 초상화를 펼치던 칠순의 손자 고故 황의강 선생의 코가 쏙 빼닮아 있었다. …… 이들은 옛 인물상이지만 조선시대 초상화가 바로 조상의 얼굴이자 우리의 얼굴임을 증거하는 일화들이다.”(본문p18)

조선 시대 초상화는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라는 관념 아래 치밀하게 그린 것이다. 잘생긴 인물은 잘생긴 대로, 천연두를 앓았던 흔적이나 검버섯 같은 얼굴의 흠을 그대로 남겨 진솔하게 그렸다. 심지어 조선 시대 초상화를 자료로 삼아 피부 관련 질병을 연구한 의학계의 논문이 나올 정도이다. 이는 조선의 초상화가 ‘대상 인물이 지닌 진실성’에 대한 표현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점이다.

“각 인물의 개인사를 복원하는 데 있어 구체적인 사실의 이미지를 제시해주는 엄청난 양의 회화사료이다.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당대 문예사에서 최고 수준을 이룩한 회화 영역이 바로 초상화라 이를 만하다.”(본문p15)

“조선시대 초상화는 지배층의 얼굴이다. 유교사회에서 제의적 목적으로 그린 숭배나 추모의 상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걸작들이 대거 그려진 것은 당대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었고,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쌓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그토록 아름답고 감명 깊은 초상화들은 조선 후기의 문화적 환경을 여실히 웅변해주기도 한다.”(본문p45)

또한, 조선 시대에서 초상화란 ‘유교’라는 정신 아래, 군신君臣과 조상을 귀하게 여긴 결과물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약 천여 점의 초상화는 당대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얼굴인 것이다. 화가들은 이 점을 중시하여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남기는 것뿐만 아니라 대상 인물의 정신을 초상화에 담아 한층 더 높은 경지의 예술을 구현하였다.

조선 시대 초상화는 당대에 존경받던 인물의 얼굴을 통해 그들의 정신과 문화적 환경을 담은, 직접적이고도 직설적인 역사의 증거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조선을 이끌어 나갔던 조상들의 삶을 더욱 사실감 넘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

조선 시대는 '초상화의 르네상스'라고 불려도 부족하지 않다. 이 시기에는 한국 미술사 사상 가장 많은 초상화가 그려졌고 예술성 높은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왕의 얼굴을 기록한 어진부터 공신과 문인의 영정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은 시대의 얼굴을 손으로 기록했고 초상화를 통해 인물들의 정신을 발현해냈다.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는 위와 같은 조선 후기의 초상화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인 이태호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카메라 옵스쿠라의 유입에 따른 초상화의 변화를 추적하고 한국적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의 초상화의 사실정신과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전할 것이다.


책 속으로

초상화부터 시작하여 이른바 ‘셀카 세대’까지, 사진 찍기 좋아하는 요즘 한국의 풍조를 보면 자신의 모습을 남기기 좋아하는 민족이라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조선시대 초상화의 주인공은 왕과 왕족, 사대부 고위관료와 문인들에 국한되어 있었다. 궁궐을 비롯하여 공사公私의 사당이나 영당影堂, 서원書院과 같은 추모 공간에 군왕, 공신, 스승, 조상 등을 기리는 제의祭儀의 대상으로 초상화가 제작되었다. 즉 충효忠孝를 내세워 군신君臣과 조상을 귀하게 여긴 유교사회의 문화지형 아래 발전한 것이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라는 관념 아래 치밀하게 그린 회화성을 뽐낸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사실 묘사의 ‘진실성’을 가장 큰 미덕으로 삼았다. 잘생긴 인물은 잘생긴 대로, 천연두를 앓았던 흔적이나 검버섯 같은 얼굴의 흠은 흠대로 진솔하게 그렸다. 이 점이 조선시대 초상화의 미덕이다. 심지어 조선시대 초상화를 자료로 삼아 피부 관련 질병을 연구한 의학계의 논문이 나올 정도이다.

초상화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얼굴에서는 성격, 인품, 직업 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래서 장년長年 이후의 얼굴은 그 사람을 말해준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외형에 풍기는 내면을 완벽하게 담는 전신의 표현이란 본디 한계를 지닌다. 그 닮음의 정도를 논한 18세기 한 초상화가의 전신론이 있어 소개한다. 동래부사 "유수 초상"을 제작하면서 진재해秦再奚, 1691~1769가 1726년 7월 24일 유수에게 보낸 편지에 담겨있는 내용이다. 초상화를 직접 그려본 화가의 체험이 담겨있는 전신론이기 때문에 주목되는 의견이다.

화원들의 초상화 초본 제작방식도 임희수의 작업과 다르지 않은데 1720년대에서 1730년대의 『초상초본화첩』국립중앙박물관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이는 18세기 화원들이 제작한 고위직 관료의 초상화 밑그림으로, 정본 초상화를 대비한 유지초본이다. 초본들은 콩기름 같은 식물성 기름을 먹인 유지 바탕에〈이창의 초상처럼 얼굴과 관복의 흰색 부분을 표현하는 데 배채법을 적극 활용한 경우가 있어 주목할 만하다. 도판8 당시 몇몇 초상화의 밑그림인 초본을 통해 뒷면에 채색된 사실을 발견했다. 그림의 뒷면을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족자 형태의 초상화는 전등을 비추어보면서 뒷면에 채색하는 배채背彩의 실태를 확인했다.

조선 후기 초상화의 변화는 얼굴과 의습衣褶 표현에서 두드러지는 입체화법이나 바닥처리의 투시도법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서양화의 영향과 관련 깊은 묘사방식이다. 필자는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면서 18세기 후반의 초상화법이 이 과학기재의 사용과 무관하지 않음을 생각하게 되었다.“이기양이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 곧 카메라 옵스쿠라로 초상화를 그렸다”라는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의 증언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초야에 은둔한 문인 취향을 따른 형식이고, 시골 선비다운 꼬장한 기개와 소박함이 묻어나 눈길을 끈다. 화원의 초상화에 비해 회화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공신화상의 딱딱함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공신상의 공수 자세와 달리 손을 드러낸 자태, 일상복이나 유복, 그리고 소품 배치의 자연스러움이 큰 매력이다.

소담한 솜씨이지만, 안면과 의습에 입체감을 살짝 살렸다. 의자나 화문석 바닥을 보면 당시 채용신의 초상화법과 유사하면서도 선묘와 채색이 부드럽고 가벼운 편이다. 화면의 상단 좌우에 붉은색 면을 마련하고 쓴 찬문 형식은 조선 후기 승려 초상화를 연상케 한다.

이같이 지역의 스승이나 문인의 초상화를 제작하는 전통은 조선 초부터 꾸준하였던 것 같다. 경북지역 외에도 전남지역 영암의 15세기 중엽 〈최덕지 초상〉烟村 崔德之, 1384~1455 도판16이나 1626년 호서湖西 화가 이응하李應河의 원본을 이모한 〈김선 초상〉市西居士 金璇, 1568~1642 도판17 승려화가 색민色旻이 그렸다는 강진의 〈이의경 초상〉桐岡 李毅敬, 1704~1740 장성의 승려화가가 그렸다는 〈변종락 초상〉碁翁 邊宗洛, 18세기 후반 등을 들 수 있다.

























 
지은이 | 이태호
  •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및 문화예술 대학원장
  • 경기도•충청남도 문화재위원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 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전남대학교 교수 및 박물관장, 명지대학교 박물관장을 지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근현대회화까지 한국미술사 전반에 폭 넓은 관심을 가져왔으며 초상화, 풍속화, 진경산수화 등 조선 후기 회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 시대 우리 미술』(1991), 『풍속화』(1995), 『조선 후기 회화사의 사실정신』(1996), 『그림으로 본 옛 서울』 (1996), 『미술로 본 한국의 에로티시즘』(1998), 『한국 미술사 기행-금강산 천 년의 문화유산을 찾아서』(1999),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2008),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2010, 2015) 『한국미술사의 라이벌-감성과 오성 사이』(2014) 등이 있다. 공저로 『운주사』(1994), 『고구려 고분벽화』(1995), 『한국 미술사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1997), 『한국의 마애불』(2001), 『한국의 초상화』(2007) 등이 있다.

    전시 기획 도록으로는 『조선 후기 그림과 글씨』(1992), 『몽유금강』(1999), 『만남과 헤어짐의 미학』(2000), 『유희삼매-선비의 예술과 예술 취미』(2003), 『20세기 7인의 화가들』(2004), 『내일을 여는 꿈, 실학』(2004), 『조선 후기 회화의 기와 세』(2005), 『한국근대서화의 재발견』(2009), 『500년만의 귀향-일본에서 돌아온 조선그림』(2010), 『조선 후기 산수화전-옛 그림에 담긴 봄 여름 가을 겨울』(2011), 『조선 후기 화조화전-꽃과 새, 풀벌레, 물고기가 사는 세상』(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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