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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분류 : 소설/비소설 / 소설
가을에 온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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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저 자 박경리
ㆍ역 자
ㆍ구 분 국내서
ㆍ발행일 2014년 01월 15일
ㆍ정 가 18,000원
ㆍ페이지 536 페이지
ㆍISBN 978-89-6053-276-2
ㆍ판형 145×210
ㆍ출판사 마로니에북스


훼손된 가족관계의 비극적 결말

강렬하고 과도한 애정관계 속에 나타나는 인간의 내면



한국 문학의 거장, 작가 박경리의 문학은 25년에 걸친 『토지』의 연재와 완간으로 한국문학사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토지』의 서서에 담긴 수많은 장면,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동북아시아를 오가며 생성하는 개개인의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1960년대에 작가는 그 자신이 “일생 동안 다 못 쓸 만큼 소재는 많이 있지만 내 능력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라고 말했을 만큼 신문이나 문학 전문지에 작품을 연재하고 곧바로 단행본을 간행하거나, 전작 형태로 작품을 출간하는 등 바쁘고 활동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하던 1960년대에 쓴 『가을에 온 여인』은 재산과 미모, 그리고 예술적 감성까지 소유한 한 여인이 사랑을 빼앗긴 상처와, 그 상처로 인해 복수를 감행하고 파멸하는 내용이다. 애정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자기 소외와 과도한 욕망이 불러오는 생의 비극적 심연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며 박경리 애정소설의 한 축을 이루었다.

『가을에 온 여인』은 ‘상처받은 고독한 영혼’과, 그로 인한 여성 인물들의 분열된 자아와 애정의 과도한 욕망이 비극적 파국으로 이어지는 박경리 애정소설의 기본 문법에 충실한 작품이면서도 1960년대 당시 현대소설의 흐름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추리소설의 기법을 사용한, 흔치 않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비밀과 금기와 은밀한 불륜의 관계로 뒤엉킨 푸른 저택

상처받은 영혼들이 살아가는 곳



작품 초반, 『가을에 온 여인』에서 주인공 신성표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푸른 저택’이라는 공간으로, 이는 등장인물들의 욕망이 충돌하고 갈등이 축적되는 곳이었다. 이곳은 소설 속에서, ‘영화에서 혹은 외국 잡지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는 세련된 서양식 저택’이며, ‘여왕처럼 우아하게 느껴지는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 그리고 ‘호숫가에 날개를 접은 백조처럼 청초한’ 모습의 대저택으로 묘사되어 있다. 커다란 철문 앞에 ‘에메랄드빛과 우윳빛의 앙상블로 된 고급 승용차’가 서 있는 푸른 저택은 1960년대의 현실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초현대식의 공간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부를 표상하는 왕궁에 다름 아니다. 푸른 저택을 중심으로 주요 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애욕과 불륜이 교차하며, 질투와 음모가 ‘관계의 지옥’을 만드는 이 작품의 주요 인물들은 욕망의 어긋남으로 인해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푸른 저택에는 따뜻한 가족애가 결여되어 있으며, 구성원들 사이의 정서적 유대마저 단절되어 있다. 푸른 저택은 ‘자욱한 안개처럼 비밀에 싸인’ 곳인 동시 애정과 치정이 교차하고 음모가 꾸며지는 미궁이다.

애인 관계였던 강 사장 동생과의 결혼에 실패한 오 부인은 현 박사와 공모하여 강 사장 동생을 음독자살로 가장하여 살해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이후 오 부인은 강 사장과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고, 미대를 중퇴하고 댄서로 일하다 들어온 석영희와 푸른 저택에서 함께 산다. 그런데 오 부인은 자신의 비서와 찬이의 보모 역할을 하는 석영희가 남편과 불륜 관계인 사실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푸른 저택에서 자신의 애인이었던 강 사장 동생이 자신을 배신하고 나의화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 찬이를 키우며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푸른 저택은 바로 남편의 불륜이 이루어지고, 오 부인의 전 애인이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와 동거하는 일상의 나날에서 상처를 덧나게 하는 증오의 미궁인 것이다.

이러한 비밀들은 애증과 비틀린 애정 관계를 낳는다. 이러한 양상들은 강 사장과 오 부인 사이의 냉랭한 부부 관계를 비롯하여, 심야에 들리는 발소리의 비밀로써 강 사장과 석영희의 불륜, 여기에 찬이의 가정교사 신성표와 강 사장의 정부 석영희 사이의 또 다른 애정, 더 나아가 작품이 진행되면서 형성되는 오 부인과 신성표 사이의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관계 등으로 발전되어간다. 이러한 관계들은 푸른 저택에 거주하고 관계를 맺는 인물들 모두를 애정과 불륜이 뒤엉킨 애욕의 연쇄 고리로 엮어가고 점점 서로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여러 인물의 애욕과 불륜이 뒤엉켜 서로의 내면에 상처를 내고 종내에는 파국이 예정된 애증의 용광로인 푸른 저택에서 인물들 사이에는 애증과 정신적 상처만이 남게 된다. 이 훼손된 가족관계의 서사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박경리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과 소외


작가 박경리는, 수치적인 면에서는 점점 끝없는 팽창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사물은 끝없이 세분화되고 분열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반면, 사람들은 늘 불안해하고 소음에 쫓기며 군중 속에서 외톨이와 같은 고립감에 빠져 살아간다고 진단하면서, 이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사랑에 있으며, 그 사랑을 견뎌내는 시간만이 작품 속의 오 부인처럼 상처를 받고 살아가는 존재들을 치유해주고 존엄을 지켜낼 수 있다는 신념을 그의 문학 인생 내내 실천하였다. 상처를 입은 영혼들의 모든 관계 회복과 이를 위한 실천에는 사랑의 시간이 필요하며, 그러한 사랑의 온기야말로 소외된 자들의 내면에 새겨진 상처들을 근본적으로 치유해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우리 삶의 과정에서, ‘사랑이 없는 순간은 죽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연애소설로서의 품격과 깊이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연애소설들 가운데서도 『가을에 온 여인』을 통해 불륜을 모티프로 하는 애정의 서사를 통해 애욕과 연애의 다른 점을 구별하였다. 또한 작중인물들의 애정 심리와 그 행동 사이에 가로놓인 진정한 관계성의 부재, 상처받은 내면의 분열된 의식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이성과 감정의 부조화가 인간의 영혼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여주인공 오세정의 총격 살해와 자살이라는 충격적 장면으로 이야기를 종결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연애의 순수성’을 판단하는 사회의 시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물질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자본주의 왕국에서도 사랑이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도 그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였다.


책 속으로

‘오늘 밤에도 또?’
야릇한 기대와 불안이 그의 발소리를 죽였다. 성표는 화장실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용변을 끝낸 그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니나 다를까, 조심조심하며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왼편 복도 쪽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발소리는 차츰 가까이 다가왔다. 화장실 앞을 지나서 그 발소리는 오른편 복도 쪽으로 사라져버렸다.
‘해괴한 일이다. 알 수 없어.’
오륙 일 전부터 이 시간에 그 이상한 발소리가 어김없이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성표는 누가 화장실로 오는가 보다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그 발소리가 화장실을 지나쳤을때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별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 날도 그러했다. 그 다음 날도. (105쪽)


“신 선생.”
“네.”
“블라우스 호주머니 속에 담배가 들어 있어요. 좀 꺼내주세요.”
오 부인은 앞을 바라본 채 말했다.
성표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호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체온이 손끝에 닿는다. 바로 유방 위다. 성표의 손이 떨렸다. 겨우 라이터와 담배를 꺼내었다.
“물려주시구, 불도 켜주세요.”
성표는 담배 한 개비를 뽑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주저하면서 오 부인 입에 물려준다. 루즈 탓이겠지만 오 부인의 입술은 타는 듯 붉었다. 한 손으로 바람을 막으며 라이터를 켜서 불을 댕겨줄 때 오 부인의 머리칼이 성표 볼에 와 닿았다. 미묘한 촉감이었다. 그리고 그윽한 냄새였다. 성표는 전기가 통한 것처럼 전신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을 느꼈다. (233쪽)


“누군가가 우리를 죽이려 한다면 신 선생은 어떡하시겠어요?”
오 부인은 의연히 돌아앉은 채 말했다. 성표는 말이 없다.
“억울하죠? 그럴 거예요.”
오 부인은 혼자 뇌듯 말하고 역시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죽이려는 사람은 강 사장입니까?”
성표는 무겁게 입을 떼었다.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할 수 없죠.”
“할 수 없다…… 지금 이 부근에는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아무도 없단 말예요. 얼마 가지 않아 해는 떨어지고 어둠이 올 거예요.” (287쪽)
 

박경리

1926년 10월 28일(음력)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 으로 등단하였다. 『표류도』(1959), 『김약국의 딸들』(1962)을 비롯하여 『파시』(1964), 『시장과 전장』(1965)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하여 26년 만인 1994년에 완성하였다. 2003년 장편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를 「현대문학」에 연재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수필집 『Q씨에게』, 『원주통신』, 『만리장성의 나라』,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생명의 아픔』 등과 시집으로 『못 떠나는 배』, 『도시의 고양이들』, 『우리들의 시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등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명예문학 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연세대학교에서 용재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1996년부터 토지문화관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현대문학 신인상, 한국여류문학상, 월탄문학상, 인촌상, 호암 예술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칠레 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학 기념 메달’을 수여받았다. 2008년 5월 5일 타계하였으며정부에서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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